EU 데이터법 시행과 국내 가전업체들의 비즈니스 전략 변화
EU 데이터법 시행과 국내 가전업체들의 비즈니스 전략 변화
세계 최대의 농기계 제조사인 미국 존디어 (John Deere)사는 AI 관련 기술을 이용, 기계내에 센서를 내장시켜 자율주행트랙터, 작물과 잡초를 분리, 제거하는 정밀 농업 솔루션 등 최첨단 농기계를 판매하면서 기계적 고장시는 물론, 시스템 보정, 기능활성화 등의 필요시 자신이 제공하는 독점적 SW와 진단도구만을 이용하도록 함에 따라 결국 구매자인 농민들이 미국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계를 구입한 농민은 값비싼 수리비와 농기계 사용중단 시간 증가로 인한 수입 감소등의 손실에 대해 독점금지법 위반을 주장하였고, 연방거래위원회 (FTC)도 2025년 1월에 원고로 가세하면서 해당 사건은 ‘right to repair’ 소송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 하드웨어 기계제품이 아닌 AI가 들어간 스마트 SW제품으로 농기계가 진화되어 이미 판매되고 있고, 더 나아가 스마트홈, 스마트공장 등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인터넷에 연결된 IoT제품들은 '존디어' 식 분쟁이 쉽게 발생할 수 있기에 이제는 단순히 디지털기기를 수리할 권리의 문제가 아닌 제조물데이터의 공유를 둘러싼 새로운 법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공장에서 제품 정리, 운반, 생산을 하는 산업로봇에서 기계적 오작동이 발생할 경우 공장 소유자 (산업로봇 구입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입한 기기에서 만들어진 각종 제조데이터는 생산 노하우가 담긴 것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장수리 또한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로봇을 제조한 제조사는 기계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 분석할 수 있어야 고장 원인도 찾고 성능도 개선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AS를 자신이 직접 하여야 한다고 생각할겁니다. 반면 해당 SW/AI기술을 개발한 회사는 알고리즘 개선과 새 모델개발은 물론 당장의 고장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제조데이터에 대한 접근, 사용권한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등 종래의 영업비밀과 특허권보호를 둘러싼 갈등 조정차원을 넘어서 누가 IoT제품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소유하는가?’의 새로운 문제로 제기된 것입니다.
EU는 IoT디지털제품에서 생산되는 이러한 제조데이터에 대한 활용 등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법 (Regulation 2023/2854 on harmonized rules on fair access to and use of data: 이하 “EU 데이터법”이라 함)을 2025년 9월 12일부터 시행하려 하고 있고, EU데이터법의 핵심조항중 하나인 연결제품 (connected product)과 관련 서비스의 '설계의무'가 1년뒤인 2026년 9월12일로 시작됨에 따라 국내 디지털 제품업체들에게도 기존 비즈니스 전략과 제품설계 단계부터의 재검토, 신규 투자, 더 나아가 연결 사업자들과의 사업전략 수정 등 새로운 이슈들을 낳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AI시대 제조업에서의 디지털데이터 접근, 활용을 둘러싼 법적 쟁점들과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EU 데이터법, 그리고 주요 내용의 의미를 분석한 뒤, 특히 ‘글로벌 AI가전시장점유율 1위’를 국가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정한 이재명 정부하에서 우리나라의 수출가전제품을 대표하는 삼성, LG의 비즈니스 전략에 미칠 영향, 방향 등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I. 디지털연결제품의 데이터 이용권을 둘러싼 분쟁 개관
1. 데이터는 우리 민법상 물건으로 정의되는 (제98조) “유체물 및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물권인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데이터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채권계약에 의한 이용대상 (이용권)일 뿐입니다. 또한 계약에 의해 얼마든지 특정인만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에 데이터는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게 이용이 열려 있는 ‘공유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2. 산업로봇을 사용하여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려는 사업자 A가 산업로봇을 만드는 업체B와 제품구입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경우 “로봇이 생성하는 모든 운영데이터는 제작업체가 수집하고 운영개선 등에 활용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식의 로봇구매 계약조항을 접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데이터에 대한 외부 접근을 허용하게 되면 제작사 B사의 핵심 기술과 지적재산권이 유출될 수 있으며 비전문가의 수리는 더 큰 고장과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될 수 없다는 추가 설명도 듣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관련 제조데이터가 방대하게 쌓임에 따라 비용 등을 고려하여 서버를 임대하는 것보다 외부의 전문 클라우드 업체 C사에 데이터의 처리, 보관 등을 위탁하려 할 경우 “생성된 모든 파생데이터 관련 지식재산권은 C사에 있다”는 식의 계약서 조항 또한 보게 될 확률이 큽니다. 더욱이 외국의 클라우드 업체라면 데이터의 보관과 처리를 외국 소재 서버에서 하도록 하며 분쟁관할권도 외국으로 하는 계약조항도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스마트 공장에 투자하려는 A사업자 입장에서는 B, C사의 그러한 계약조항들에 대해 자신의 핵심 생산 내지 제조 노하우를 지키지 못한다고 반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의 독점적 이용권 내지 접근권, 관련 라이센스 비용 등을 둘러싼 계약서의 조항들이 투자 초기 비즈니스 협상에서 자주 부딪치게 되는 쟁점이지만 디지털기기내의 부품 회사를 통해 생산데이터가 외부 업체로 제공되어졌다면 당연히 A사의 영업비밀, 특허등의 침해를 둘러싼 법적 문제가 추가로 제기될 수 있고, 또한 외부 클라우드 C사를 통해 제조 및 설비 데이터를 분석, 보관 처리하여 왔지만 더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다른 클라우드 업체로 바꾸고자 할 경우에는 “계약 종료시 원본 (raw) 데이터만 제공되며, AI가 학습하고 분석한 결과 데이터나 모델은 이전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동안 축적된 산업데이터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등 소위 ‘데이터 가버넌스’ 전략부분은 AI시대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제조업체에게는 사전 전문 법률자문이 꼭 필요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3. 디지털제품의 데이터에 대한 이용 및 접근권을 둘러싼 산업현장에서의 분쟁들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 내지 접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 셈이고, 독점규제법이나 영업비밀보호법과 같은 실정법 적용을 사후에 검토할 수 있는 사안도 있을 수 있지만 특히 B2B관계에서는 1차적으로 기업간 계약서에 산업데이터의 이용 및 접근권, 영업비밀유지의무를 어떻게 명확하게 정했는지가 향후 소송에서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떤 계약 조항을 넣고 뺄 것인지에 대한 협상단계 (계약서작성단계)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어집니다.
II. EU 데이터법 의미와 주요 내용
1. 2023년에 제정된 EU 데이터법은 같은 해인 202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디지털시장법 (Digital Markets Act, Regulation 2022/1925 on contestable and fair markets in the digital sector: 이하 "EU DMA"라 칭함), 데이터가버넌스법 (Data Governance Act, Regulation 2022/868 on European data governance: 이하 "EU DGA"라 칭함)과 함께 AI와 디지털시대의 EU 데이터전략을 담은 핵심법입니다.
구체적으로 EU DMA는 거대 온라인플랫폼 (게이트키퍼)들의 시장지배력을 규제하여 공정한 디지털 시장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으로서 2023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고, EU DGA는 2023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면서 데이터 중개서비스 제공자 (data intermediate service provider)라는 사업자 유형을 신설함으로써 데이터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기장 외부환경을 정하는 성격의 법들이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올 9월 12일부터 시행될 EU 데이터법은 데이터 경제의 활성화를 목표로 이용자와 데이터 보유자 상호간 일방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 불공정 (unfair)하게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이용이 저해되는 것을 막고자 EU DMA, DGA와 달리 경기장 안에서의 실제 세부 경기규칙 법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EU데이터법은 데이터 흐름에 대한 단순 규제법이 아니라 EU가 의도하는 데이터 경제에서의 새로운 게임 규칙이고 핵심은 종전 독점적 데이터소유권을 가졌던 제조업체의 지위를 데이터관리자로 바꿔 데이터공유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더욱이 종전의 데이터 관련 법률이 주로 개인정보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에 반해 EU 데이터법은 비개인정보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규제이고 EU DGA와 달리 이용자와 데이터보유자 (제조업자) 상호간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EU시장에 수출하거나 현지 기업들과 협력하는 모든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EU 데이터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2. EU 데이터법은 인터넷과 연결된 사물인터넷(IoT) 및 연결제품 등의 확산으로 인해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와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특정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이용을 촉진함으로써 데이터 독점과 시장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여 데이터 공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데이터의 활용을 촉진함으로써 EU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꾀함은 물론, 데이터에 대한 접근 불균형을 해소하고 독점을 방지하여 EU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데이터 기반 혁신에 참여할 기회 또한 보장하기 위해 EU 내에 법인을 설립하지 않았더라도, EU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의 산출물이 EU 내에서 사용되는 경우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역외적용'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3. EU 데이터법은 위반시 벌칙규정까지 두고 있는 강행법이지만 계약자유의 대원칙을 부정하면서까지 이용자에게 데이터 접근, 이용에 대한 새로운 법적 권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즉 이용자와 데이터 보유자 상호간 계약시 일방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 사전에 불공정 (unfair)하게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이용이 저해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강행법이기에 이용자와 데이터 보유자간 데이터의 접근, 사용, 제3자에게 제공시 등에 대한 각 권리와 의무의 안배를 하고 있지만 만약 일방적 강요가 아닌 합의에 의해 계약이 이루어졌다면 사후에 설사 일방에게 불리한 데이터 접근 및 이용 결과로 나타나더라도 EU 데이터법 위반이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EU데이터법의 강행 법규성은 결국 데이터의 제공, 이용, 그리고 이를 위반할 경우의 제재규정 (제재의 강도는 각국이 정할 수 있지만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의 경우에는 GDPR 위반시와 비슷한 정도로 셈)으로 상징되지만 이는 계약내용이 일방에게 불리하게 사전 강요될 경우를 타겟으로 한 것이기에 문제의 해당 조항이 불공정하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계약조항은 그대로 적용되어지게 됩니다. 또한 데이터의 접근과 사용에 대해 ‘좋은 상사관행’ (good commercial practice)에서 상당히 벗어날 다양한 경우들을 열거, 불공정을 추정 (presumed)케 함으로써 계약자유를 가급적 존중하려 하고 있고, 사후 수정합의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융, 국방 등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특정 데이터의 사용용도를 제한하거나 이용시 추가 비용지불요구 등을 제안, 당사자끼리 합의하여 정하는 것도 허용되어집니다.
4. EU 데이터법은 또한 데이터의 공유를 통해 디지털 연결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둘러싼 새로운 혁신과 개발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자가 해당 제품에 대한 투자의욕을 꺾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용자가 가격, 용도 등을 차별화한 '경쟁제품'을 동일 시장에서 개발하고자 제조데이터에 대한 접근 및 이용을 하려 한다면 이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존디어 (John Deere) 사건의 쟁점이 된 '제품의 AS서비스를 받기 위해 제3자에게 이용자가 제조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제품 자체에 대한 제조업자의 투자 인센티브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EU 데이터법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제 3조는 "연결제품과 관련 서비스는 이용자가 데이터에 쉽고, 안전하고, 무료로 접근 가능하도록 설계되고 생산되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데이터 보유자 (대부분은 제품의 제조업자)의 계약상 비대칭적 우월적 지위 남용을 원천적으로 방지함으로써 데이터를 통한 해당 제조산업과 서비스의 혁신과 경쟁을 촉진시킬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디지털제품 데이터가 이용자에 의해 상호 교환 가능하거나 대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 연결제품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를 방지함으로써 해당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제품에 대한 투자 유인과 혁신적 노력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EU 데이터법상 '연결 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EU 데이터법에 따라 얻은 디지털데이터를 사용하여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지만 동일한 제품시장에서 '경쟁하는 연결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EU 데이터법은 '제품' 자체의 복제나 경쟁은 제한함으로써 제조업체의 핵심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보호와 유인을 하되 동시에 해당 제품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수익성이 높은 애프터 마켓, 보조 서비스, 그리고 기타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대한 접근성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자 하는 두개의 목표를 모두 겨냥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EU 데이터법은 단순 AS목적은 물론이고 제품의 수명연장을 위한 수리 등을 위해 IP, 영업비밀 침해 등의 위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역분석 (reverse engineering) 목적의 데이터접근 및 이용도 폭넓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업비밀을 이유로 데이터의 접근 및 공개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체에게 EU 영업비밀보호지침 (Trade Secrets Directive, 2016/943)에 따른 영업비밀의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상업적 가치가 높고 비밀유지를 위해 합리적 보호조치 노력을 이미 기울이고 있어야 함) 공개할 경우 심각한 경제적 손해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객관적 증거를 들어 입증하여야만 합니다. 즉 EU 데이터법은 공개와 공유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 사유인 영업비밀의 보호는 대단히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집니다.
5. 주요 내용
5-1. EU 내 시장에 출시된 인터넷 연결제품 (스마트TV, 스마트 가전, 산업용 로봇 등) 및 관련 서비스의 사용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에 적용됩니다. 또한 EU 데이터법상 데이터는 개인 데이터와 비개인 데이터를 모두 포괄하지만, 주로 비개인 데이터의 활용, 즉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원시(raw) 또는 사전 처리된(pre-processed) 데이터가 법 적용 대상이고, 상당한 투자의 산물인 추론(inferred)되거나 파생된(derived) 데이터는 제외됩니다. 또한 법이 적용되는 관련 당사자는 디지털제품 제조업체 및 관련 서비스 제공자, 연결된 제품 및 관련 서비스 이용자 (개인 및 법인 포함), 데이터 보유자, 데이터 수취인 등입니다.
데이터의 경우 산업로봇을 사용하는 예를 든다면, 로봇의 운영과 관련된 소위 ‘운영데이터’도 있지만 특정 작업을 수행하면서 생성하는 ‘작업데이터’도 있게 됩니다. '운영데이터'는 로봇의 작동 상태, 고장 여부, 성능 등 로봇 자체의 운영과 관련된 데이터이기 때문에 제조사가 로봇 유지보수 및 성능 개선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있고 따라서 제조사가 데이터에 접근하거나 사용하는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반면, 후자의 ‘작업데이터’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생산 노하우가 포함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로봇을 구입하여 현장에서 사용하는 사업자를 배제하고 '작업데이터'의 이용, 접근권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EU 데이터법은 디지털 연결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운영데이터’를 해당 제품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5-2. EU 데이터법은 디지털 데이터가 연결된 제품이나 관련 서비스에서 이용자에 의해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경우, '데이터 보유자'는 별도의 사전 합의가 없는 한 '즉시 사용 가능한 데이터 (readily available data)'를 이용자에게 불필요한 지체 없이, 무료로, 포괄적이고, 구조화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기계가 판독 가능한 형식으로 제공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이용자의 접근권과 이용권을 보장하고 아울러 자신의 데이터를 제3자에게 공유하도록 할 수 있도록 '원천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이용자'를 핵심에 놓고 있습니다.
'원천적'이란 의미는 2026년 9월12일부터 EU에서 판매되는 디지털연결제품과 관련 서비스는 데이터에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설계' 단계부터 (design by default) 법적 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EU 데이터법은 완제품 생산, 판매이후는 물론이고 '설계 기반 접근’ (access by design) 원칙을 통해 제품 기획 및 설계 단계부터 이용자에 대한 데이터 접근성을 의무적으로 고려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용자'는 인터넷 연결된 디지털제품을 구매하여 소유하게 되거나 사용권을 계약상 이전받은 자연인 또는 법인 (예: 사업체, 소비자 또는 공공 부문 기관)을 의미함에 따라 산업용 로봇을 구입한 공장주나 스마트 가전제품을 구입한 소비자 모두 EU 데이터법상 이용자에 해당됩니다. 즉 그러한 이용자는 연결된 제품을 사용하는 데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누리며, 해당 제품이 생성하는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도 누리게 됩니다.
'즉시 사용 가능한 데이터'는 데이터 보유자가 불균형적인 노력 없이 연결된 제품이나 관련 서비스로부터 합법적으로 얻거나 얻을 수 있는 제품 데이터 및 관련 서비스 데이터를 의미합니다. EU 데이터법은 산업용 로봇과 같은 '연결된 제품'의 이용자가 해당 제품이 생성하는 '제품데이터'에 무료로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제조업체가 데이터에 대한 구조적 통제력을 가지고 혁신적인 후속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을 방지하고, 데이터 경제 내에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자 함을 주 목적으로 하되, B2C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용자는 제조데이터를 제3자 (데이터 수신자)에게 공유하도록 데이터 보유자에게 직접 요청할 수 있는 (B2B)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GDPR의 '개인정보 이동권'을 비개인 산업 데이터 영역까지 법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되고, 결국 이용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 제공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B2B의 경우 데이터보유자는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제 3자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데이터 공유를 꺼리지 않게끔 인센티브는 제공하고는 있지만 향후 B2B의 경우 실제 보상액 결정을 둘러싼 사후 갈등의 여지는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3. EU 데이터 법의 핵심 조항 중 하나인 데이터처리서비스 사업자간의 전환 (Switching) 의무 (제 4장)는 데이터 공유와 활용에 필수적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고려, 기술적· 계약적 장벽을 설정하여 사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이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종속 효과 (lock-in effect)'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데이터 이동 및 전환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EU 데이터법은 제조업자를 타겟으로 개별 디지털제품과 서비스에 국한해서만 데이터공유와 활용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까지 포함, 데이터 경제를 구성하는 인프라도 규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비 개인적 (non-personal) 데이터 처리 서비스 제공자는 EU 역외 정부의 법률에 근거한 데이터 접근 요청이 EU 법 또는 회원국 법과 상충될 경우, 이에 응하지 않도록 모든 적절한 기술적, 조직적, 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함으로써 (제32조) 비개인정보라도 국제 이전에 관한 한 EU의 '데이터 주권' 이 미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곧 EU 역외에 데이터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추가 법적, 경제적 리스크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III. 우리 디지털 가전제품업체들에게 던져진 전략적 선택지
1. 독일의 기술대기업인 보쉬 (Bosch)처럼 EU 데이터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역내 기업은 데이터의 독점을 통한 이윤극대화 전략추구가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일찍이 사용자의 데이터통제권을 강화하는 조치를 넘어 데이터 공유를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고, 역외인 미국의 월풀 (Whirlpool)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2023년 12월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는 EU 데이터법을 GDPR과 함께 글로벌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규제요인으로 꼽으면서 컴플라이언스 차원의 대응을 생각하고 있는 등 내용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글로벌 가전업체라면 기존 비즈니스 전략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심지어는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상징처럼 브랜딩을 해 온 독일의 밀레 (Miele)처럼 '데이터의 비공유'를 원칙으로 폐쇄적 데이터 유통생태계를 유지하면서 타겟 영업을 하여 왔지만 EU 데이터법이 디지털가전산업의 가치 사슬을 재정의하고 연결 (connected) 제품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디지털제조기업들에게 강제 적용되도록 하였기 때문에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전환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2. 제조업체가 만약 EU 데이터법상의 '데이터보유자'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면 컴플라이언스 차원의 꼼꼼한 추가 체크 부담, 데이터의 B2C차원의 단순 변신을 뛰어넘어 개방형 API와 개발자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많은 개발자와 사업 연결파트너들을 모을 수 있는 B2B 생태계 확장전략과 새로운 수익원 창출과 같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전략 마련이 요구됩니다.
유럽의 보쉬, 지멘스는 공개 개발자 포털을 운영하는 등 EU 데이터법 시행을 대비, 이미 개방형 스마트홈 플랫폼 생태계의 선두주자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삼성의 SmartThings나 LG의 ThinQ 플랫폼 역시 과거의 '자사 제품들끼리의 유기적 연동을 장점으로 내세워서 소비자가 자사 제품 생태계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Lock-in) 구축된 기존의 폐쇄적 데이터통제와 관리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B2C차원은 물론이고 개발자 친화적으로 개방형 API를 구축하면서 개방형 스마트 홈 생태계 구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고수익 독점 서비스 사업이 잠식될 것이기 때문에 독립 내지 일회성 수리업체가 따라올 수 없는 지속적인 서비스 관계모델, 즉 서비스형 제품(Product as a Service, PaaS) 또는 구독 모델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며 결국 제조업의 플랫폼을 물건이 아닌 ‘서비스 품질관리시스템’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즉 EU 데이터법은 종전 제조사가 독점해 온 데이터의 가치를 시장 전체에 개방하는 1차적 효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구매자들로 하여금 디지털전자제품들을 자사의 플랫폼에 등록케 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진단서비스를 통해 구매자를 관리하면서 온오프 라인을 통해 구축하여 왔던 종전의 독점적 B2C 유통모델이 최소한 EU시장에서는 폐기되어짐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가전제품의 경쟁력 초점이었던 뛰어난 하드웨어와 이를 중심으로 짜여진 제품 판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경쟁력, 데이터의 활용경쟁력이 디지털가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초래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조사 먼저 디지털연결제품과 서비스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성격과 유형, 사용목적 등에 따라 분류, EU 데이터법에 따른 공유의무를 어떤 종류의 데이터가 누구와 어떻게 지게 되고 또 분담시켜야 할지부터 정하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게 됩니다.
3. EU 데이터법은 특히 B2B관계에서 완제품 제조사(OEM)와 유통 채널의 관계를 넘어, 제품 생산의 근간을 이루는 공급망 전체로 그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완제품을 구성하는 수많은 커넥티드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사들은 향후 새로운 생태계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주체로 부상하게 되고, 이들의 역할 변화는 디지털가전산업의 가치 사슬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으로 보입니다. EU 데이터법 시행에 따른 변화의 시작은 물론 제조업체 (데이터보유자)이지만 데이터의 법적 공유의무는 '설계기반접근’ (access by design)으로 강제되고 이는 결국 제조사가 부품 공급사로부터 데이터 관련 사항을 전달받아야만 되는 수평적 협력 구조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 가전제품의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부품제조사가 해당 부품이 생성하는 각종 데이터를 제조사에게 명확하게 제공하지 않으면 제조사는 사용자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제조데이터 접근방법이 고려된 제품설계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품사가 완제품 제조사의 요구사향에 맞춰 물리적 부품을 제작, 납품하는 상하관계에서 완제품 최종 제조사의 데이터 파트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고 제조사를 상대로 부품에 대한 데이터 거래의 상대방 지위로 부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위상의 변화는 부품사 공급망내에서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제조사와의 데이터거래관리시스템과 능력이 떨어지는 부품사의 도태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EU 데이터법 시행이후 유통과 AS시장의 경쟁이라는 B2C 수직적 고리구조의 비즈니스 변화압력이 심해질수록 제조사 입장에서는 B2B채널에 위치한 부품사가 데이터를 무기로 자신과 대등하게 부상하는 위협적 변화에 대해서만큼은 부품시장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면서 정면 대응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려 할 가능성 또한 많아질 수 있습니다.
4. EU 데이터법이 의도하는 확대되는 시장과 서비스는 해당 디지털 제품 자체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외부의 보험사, 스마트홈 내 디지털기기의 에너지절감을 꾀하기 위한 에너지 기업 등 다양한 고객들까지 B2B로 확대 연결되어지고 특히 제조업과 관련이 없는 제3자가 제조데이터를 수신할 수 있도록 EU 데이터법은 허용함으로써 결국 제조데이터를 모아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출현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는 비례적으로 더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할 기회는 기존 사업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중간상의 위치에 있었던 디지털제품의 유통업자들은 EU 데이터법을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할 계기로 보게 될 것이고 고객과의 관계를 제품 생애주기 전반으로 확장하면서 서비스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특히 제조업체가 자사의 제품만을 관리할 수 있었던 기존의 단선 유통구조에 비해 향후 가전제품을 포함한 각종 디지털전자제품의 판매, 유통을 해왔던 유통전문 사업자들이 한 스마트가정이 보유한 모든 브랜드 디지털제품의 데이터를 모두 수집, 관리할 수 있는 압도적 우월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소비자와 디지털제조업체를 연결하여 주는 전문 중개기관의 등장도 가능하게 될 것이고 기존 유통업자들은 1차적으로 이 기회를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AI기반의 디지털제품시장과 스마트 홈 기반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에서 만약 제조업체가 유통업체, 부품업체의 변신과 도전을 기다리지 않고 단순한 제품판매. 관리업자의 지위를 뛰어넘어 데이터를 지배, 활용하는 사업자로 먼저 적극적으로 변신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시장우월적 지위를 차지할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우리의 가전제품업체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AI 3대강국’을 목표로 기술선도성장을 제창하고 있고 ‘글로벌 AI가전시장점유율 1위’를 15대 선도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EU 데이터법 시행이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국내 가전업체들의 B2C는 물론이고 특히 B2B 차원의 적극적 전략 수립과 지속적 추진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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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 MAGA 공약의 핵심부분이 제조업 (Manufacturing) 부활이었고 관세협상은 타결되었지만 높아진 관세로 인해 8월 한달동안 국내 가전산업의 대미수출물량이 26% 넘게 감소할 정도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결국 수출시장 다변화를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EU시장과 EU 데이터법을 주목하게 됩니다.
매월 발간하는 법무법인(유) 린 TMT그룹 AI산업센터의 뉴스레터인 AID에 대한 질문, 조언 등은
구태언 TMT 전문그룹장 (tekoo@law-lin.com), 방석호 AI 산업센터장 (shbang@law-lin.com),
설기석 변호사 (ksseol@law-lin.com)에게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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